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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에는 없는 이야기

- 가네코 후미코의 영전에 바치는 단상

 [※ F-Rated Magazine의 모든 평론은 F-Rated 등급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F-Rated란 영화산업 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고 성적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해 고안된 등급으로,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
☐여성 작가가 각본을 썼다.
☐여성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위와 같은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 이상이 해당되면 F-Rated로, 셋 모두 충족하면 TRIPLE F-Rating이 부여됩니다. ]


<박열> ☑여성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F-Rated





<박열>의 포스터. 실제 사진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행동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한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닌 긍정이다.”  



 사형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다테마스 판사의 말에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수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에게는 전향을 하고 목숨을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사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영화 <박열>은 이러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나 자신’을 갈구하도록 만들었는가. 그래서 이 글을 적는다. 이 글은 영화 <박열>을 보기 전에 보고 가면 좋을,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혹여나 ‘스포’가 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녀가 강렬하게 남는 이유


우선 영화 속 그녀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뇌리에 남는 것은 주인공 박열이 아닌 가네코 후미코다.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읊으며 등장하는 그녀는 박열을 보자마자 ‘우리, 동거합시다!’ 라는 말을 당차게 내뱉고, 폭탄 밀수 계획을 말하지 않은 박열의 뺨을 후려친다. 그녀는 박열을따라 형무소까지 들어가고 반역죄로 법정에 선다. 기죽지 말라는 박열의 말에 웃으며 대답도 한다. “기죽긴,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될 거야!”


 그녀가 강렬하게 남는 이유는 영화 내내 그녀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녀를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 박열과의 동거서약에 ‘동지로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점을 잊는다’고 적은 것이 후미코 자신이다. 박열이 변호사에게 대신 전한 감동적인 전언에는 “많이 컸다, 우리 열이.”라고 답신을 보낸다. 감옥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여기에서 1,000매가 넘는 옥중 수기를 작성했다. 몸은 억압됐어도 정신만은 자유로웠던 것이다.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법정에서는 조선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세를 불렀다. 신념을 버리거나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가는 그녀가 단연코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눈빛은 러닝 타임 내내 계속된다. 한 번도 눈을 피하는 일이 없었던 듯 하다. 
그녀는 언제부터 의지를 갈망하게 되었나


그렇다면 무엇으로 두드려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신념은 어디에서 생겨났나. 이것은 그녀의 자서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스물 세 해로 끝난 그녀의 삶은 도쿄로 온 5년 정도를 제외하고 평생을 다른 이의 ‘의지’에 의해 흘러갔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너무나 많은 타인의 노예로 살아왔다고 평한 이유다.


 무적자. 그녀는 태어난 이후 꽤 오랜시간을 무적자로 살았다.  1903년 출생해 1912년에 외할머니의 딸로 입적했으니 꼭 10년 정도다. 무적자라는 것은 그녀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뜻하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녀가 주위의 어른들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다. 그녀는 정말로 그러했다. 이모와 바람난 아버지, 남자에 의존하며 사는 어머니 사이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떠난 후 그녀가 유일하게 따르던 어머니는 그녀를 두고 시집을 간다.


"엄마가 그런 곳에 가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묵묵히 엄마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무신경하게 “그건 그렇네”하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계속 권유를 받자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해버렸다. “엄마 제발 소원이니까 가지마요. 가지마…….” 엄마 목에 매달려 나는 울었다.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렇다. 엄마는 결국 가버렸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를 두고.




그녀가 옥중에서 작성한 수기를 엮은 책. 읽기 고통스러울 정도의 삶을 적었다.



그리고 그녀는 친할머니를 따라 조선에 온다. 그러나 7년간 그녀는 식모 취급을 받으며 살고, 그보다 더할 수 없는 천대를 받는다. 짐작하건대 모든 위선과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했던 그녀의 사상은 여기서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와 고모가 권력을 통해 그녀의 모든 것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서술은 하나같이 지독해서, 계속 읽기에 어려울 정도다.


 심부름을 처음으로 거절했을 때 그녀는 할머니로부터 발길질을 받고 머리채를 잡혀 집밖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그녀는 끊임없이 용서를 비느라 사흘을 굶었지만, 그래도 다시 용서를 빈다.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와 고모는 “야 오늘 생선 맛있네.” 라는 말을 던진다. 여기서, 그녀는 죽음을 처음으로 결심한다. 10대 소녀가 오직 죽음을 위해 필사적으로 기차를 기다리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에 돌을 묶는 장면이 그려진다. 얼마나 삶이 절망적이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가 처음으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죽으려던 직전 그녀의 서술이다.

할머니나 고모의 박정함이나 냉혹함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겠지. 그래도, 그래도 세상에는 아직 사랑할 만한 게 무수히 있다. 아름다운 게 무수히 있다. 내가 사는 세계도 할머니나 고모 집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세상은 넓다.

그녀는 아마 이쯤부터 -이후의 삶도 녹록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외부의 일에 의해 결코 자신이 휘둘려질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듯 하다. 아마 이미 예전부터 그녀에게 누군가에 대한 의존은 금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필연적으로 평생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서약을 스스로에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그녀가 살아온 평생의 생애가 말해주고 있다.


박열은 그녀의 동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평생을 외로워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의 외적인 것들을 이용하는 사람만 가득했을 뿐, 그녀의 본질을 꿰뚫거나 그녀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이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던 찰나에 만난 것이 박열의 시 ‘개새끼’였다. 다음은 그녀가 시를 읽었을 당시를 서술한 것이다.


 정은 그것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듯 했다.

“이 시의 어디가 좋죠?”

“어디가 아니에요. 전체가 좋아요.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힘이 있어요. 나는 지금 오랫동안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을 이 시에서 찾은 듯한 기분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찾던 것은 곧 박열이 되었다.


 그 사람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토록 그를 힘차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 그렇다, 내가 찾고 있던 것,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그것은 확실히 그 안에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할 일을 갖고 있다.
알 수 없는 환희가 내 가슴 속에서 솟아올랐다.

 


 이때 쯤부터 영화의 시간과 얼추 비슷해진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서로 사상이 변치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지켜왔다는 박열의 말처럼, 일본의 권력 계급과 독립 운동, 비밀 출판과 같은 일들을 함께 하며 둘은 서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후미코의 수기는 이렇게 사랑한 박열에게 생사의 맹세를 하며 마무리된다.


“기다려주세요. 조금 더 기다려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바로 함께 살아요.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겁니다. 결코 당신을 병 같은 것으로 고통 받게 하지 않을 거에요. 죽을 거면 함께 죽읍시다. 우리 함께 살고 함께 죽어요.”




두 사람은 동거했다. 가네코 후미코가 진정한 '삶'을 시작하고, 또 끝맺은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과묵했던 박열은 그의 진심을 다테마스 판사 앞에서 이야기 한다. 그것은 그녀의 본질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동지로서의 고백이다.


 “가네코 후미코. 내가 그녀에 대해 진술하는 것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말하지 않겠다. 그녀에 관한 일체의 진술은 그녀의 주체적 판단에 맡긴다.”



마침내 자신이 된 그녀에게


 영화 <박열>은 그녀로 인해 명백한 페미니즘 영화가 되었다. 때론 무적자라는 이유로, 처녀라는 이유로,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그녀의 삶이 녹아있는 탓이다. 평생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삶을 거부했던 그녀다.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인간의 동등함이라는 그녀의 주장은오늘날 페미니즘을 꿰뚫는 핵심이다. 당시엔 '미친 년'이었을 지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녀는 죽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는 아직까지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은 영원히 남았다. 이제야 영화 속 그녀가 왜 그렇게 ‘자신’을 부르짖고 박열을 사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영화 속 그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살아 있다면 그녀의 짧은 스물 세 해의 인생에서 박열과 함께 한 마지막 순간 정도를 삶의 긍정이라 규정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몇 마디의 말들이 그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 가네코 후미코, 법정에서 피고의 마지막 발언 중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나는 철저히 당신과 동거하고 있다.”  - 박열, 기자에게 전한 후미코에게 쓴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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